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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기원 / 이기라

규모 큰 기원 있다 정원이 300명 바둑 두고 놀아도 생활비를 주는 곳 그래서 4년제 회원 경쟁 뚫고 뽑힌 곳 흑백으로 갈린 무리 협치는 무슨 협치 포석이 묘수인가 나랏일이 내 일인가 그래도 한판 승부는 물러설 수 없는 곳 너 죽어야 집이 나고 집 있어야 내가 살지 이 이치 하나로 임명하면 탄핵하며 시급한 법안은 뒷전 꽃놀이패 즐긴다. -공감력의 위대함 이번 현대시조 여름호에서 눈을 크게 뜨게 하는 시조가 있었다. 이기라의 시조 「여의도 기원」이다. 뭐든지 잘못해 놓고 감추려고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TV 뉴스를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염치가 없어진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이기라는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막말과 고성의 현장을 풍자시로 그려 놓았다. 이 작품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휴지통 / 이기라

식사 후 입을 닦은 화장지가 무슨 죄일까 좋은 일 하고서도 버림을 받는 모순 저 아예 눈물의 항변 젖어 있는 물 티슈 이나 저나 이용만 당한 세상의 온갖 휴지 거두어 다 품어 주는 천사 한 분 계시다 자리도 구석진 자리 거룩하신 성자여. -포용의 아름다움 이 시조를 읽고 대뜸 떠오른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좋은 일 하고서도 / 버림을 받는 모순”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예수만 한 인물이 어디 있으랴. 욥, 베드로, 사도 바울 같은 인물도 떠오른다. 우리 역사상의 인물 중에도 최영, 정도전, 임경업, 이순신, 김덕령 등 한두 명이 아니다. 물론 이 시조는 그런 인물을 염두에 두고 쓴 시조는 아니다. 식당 구석에 놓여 있는 휴지통은 손님이 식사 후에 입을 닦은 화장지나 물 티슈를 버리면..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가을 앞에서 / 이기라

단풍이 아름답다 말하지 말아야지 한생을 마무리며 꺼져가는 목숨 앞에 경건히 묵도를 하며 붉다고만 해야지. -단풍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말라. 한 인생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경건히 묵도하며 붉다고만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 경건하고도 지엄한 명령이다.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노년의 삶이 젊음의 삶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얘기이다. 묵도를 하며 붉다고만 말해야 한다는 것. 한 인생이 완성되어 가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를 에둘러 말한 것은 아닐까. 같은 말이라도 서로 뜻이 다르며 다른 말이라도 서로 뜻이 같은 것. 이현령비현령의 모호성ambiguity, 이것이 없다면 이미 시가 아니다. 시는 순전 작가의 몫이 아니라 독자의 몫이다. -《(주간)..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연필 / 이기라

살이 깎이고 뼈가 닳는 고행의 삶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의 길 몽당이 되도록 지나온 어제가 다 경전입니다. -연필의 나무는 살로, 심은 뼈로 비유했고, 백지는 설원으로, 지나온 길은 경전으로 비유했다.연필을 살이 깎이고 뼈가 닳아 없어지는 고행의 삶이라 했다. 몽당이 다 되도록 시어 하나 하나가 고행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가도 가도 끝없는 설원. 거기에 남겨 놓은 첫발자국. 이것이 시이다.발자국을 바라보니 삐뚤빼뚤이다. 다 닳도록 몽당이 되어 걸어온 길이다. 지나온 어제가 다 경전이다. 논어ㆍ맹자만이 경전이 아니다. 아무리 읽어봐라 내 것이 되는가. 경전은 살아오지 않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사람의 것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본질은 놔두고 / 이기라

1참새 여럿 나무에서 쫑알쫑알 시끄럽다 큰 가지 앉지 않고 잔가지만 붙잡고서 이 아침 떠들어대는 저 속내를 모르겠다. 2양지녘 개나리가 봄이 온 줄 착각일까 겨울의 중턱에서 노란 웃음짓고 섰다 어쩌면 남보다 조금 틔어 보고 싶어설까. 3여의도 개나리는 민생 법안 밀쳐 둔 채 밥풀떼기 챙기려고 아옹다옹 설전이다 저러고 민초 섬긴다니 컹컹 개가 웃는다. -시조시인들은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시조의 형식이 현실의 제 모순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조의 기원을 살펴보아도 엇시조나 사설시조에 비해 평시조는 현실비판의 기능이 약했다. 그런데 이 시조작품은 기존의 관례를 무시하고 여의도의 주인인 국회의원들을 마음껏 비판ㆍ풍자하고 있다. 제1수에 나..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무상無常 / 이기라

지나고 보면 삶은 한 개비 마른 장작 축제의 마지막 밤 모닥불로 타고나면 하얗게 남은 재 한 줌 적멸로 드는 것. -사랑하며 살아야 할 이유 새해 들어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오래 앓다가 떠난 친구. 큰 병임을 알고는 얼마 되지 않아 별세한 선배. 심지어는 매일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나던 같은 아파트 주민이 목욕탕에서 본 바로 그 날 아침 귀갓길 지하 주차장에서 숨지는 일도 있었다. 예로부터 고희가 지나면 문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워낙 친했던 분들이라 며칠씩 상가에서 지내며 애도했다. 그때마다 가슴을 치는 것이 허망함이다. 삶은 ‘축제’였던가. 세상을 어떻게 살았던 간에 결국은 ‘하얗게 / 남은 재 한 줌’으로 ‘적멸’에 드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 ..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자문自問 -술잔 / 이기라

채워지면 너로 인해 비워지는 내 가슴에 잡다한 일상사를 오늘도 털어 놓는 너에게 입술이나 바치는 나의 생은 무언가! -이기라의 「자문自問 -술잔」은 삶의 쓸쓸한 내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화자와 마주 앉은 대상은 한갓 술잔에 불과하다. 술잔은 채워지고 비워지며, 그 앞에서 뭇사람들의 인생사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술잔을 앞에 두고, “너에게 / 입술이나 바치는 / 나의 생은 무언가!” 하며 자신을 향한 질책성의 반문을 한다. 결국 화자가 진정으로 만나야 하는 대상object은 누구인가? 그 대역의 방울 달아주기를 ‘술잔’에게 시도하였으니 … 그렇다. 남아에게 술잔보다 더 만만한 ‘너’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산다는 것은 누구나 다 ‘너’라고 하는 대상에 입술을 바치는 일, 그..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들러리 / 이기라

나 하나 빠진다고 안 될 일은 아니지만 자리를 채워 주고 빛내주기 위해서 나 오늘 초대를 받고 행사에 참석한다. 중심이 되지 못하고 주변만 늘 맴도는 꽃잎은 꽃술의 들러리일 뿐이지만 한 송이 꽃의 품격은 꽃잎에게 달렸다. -들러리라는 말은 어떤 일을 돕거나 그것을 돋보이게 해 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삶의 주인공이겠지만 어떤 삶을 비추어 주는 시각에 따라 보이는 장면이 다를 수 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왕으로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한 비극은 없다고 본다. 본래 이 세상은 그 구성의 근본이 자연의 이치에 맞게 구성이 되었다고 본다. 아무리 게으른 개미들의 세계에서도 개미의 조직이 바뀌면 놀고먹던 개미 중에서 30%는 일개미로 변신을 한다고 한다. 들러리라는 말은 이기라 시..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오시는 봄 / 이기라

징검다리 건너서 봄 오시기 기다린다 물오른 버들가지 호드기 꺾어 불며 저 멀리 오시나 보다 아지랑이 앞세우고. -이 작품은 물 흐르듯 흐르는 율격이다. 봄이 오는 모습을 공감각으로 제시하였다.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의 형식 속에 청각과 시각으로 공감각을 이룬 정격 시조로서 깔끔한 작품이다. 문학은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적인 눈이 필요하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각을 작가의 눈으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나타내었을 때 문학적 가치를 발휘한다. -(김전, 《문학세계》 2019. 6월호 월평)

카테고리 없음 2026.05.23

접시 / 이기라

몸을 낮추니 마음이 넓어지고 마음이 넓어지니 품을 게 많아진다 품어서 넉넉한 둘레 누릴수록 여유롭다. -사람이 살면서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 수천, 수만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이기라 시인의 시조 「접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하고 즐거운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물병은 주둥이가 있어 물 외의 다른 것을 담기가 용이하지 않다.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는 쉽게 담을 수는 있으나 입자가 작은 것들은 틈새로 끼어드는 단점이 있다. 접시는 키가 낮다. 낮은 높이에도 드넓어 많은 것을 쉽게 담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더 넓은 마음을 품어 내고, 그래서 결국은 넉넉하고 풍요로운 음식과 과일들을 담아 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접시와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내 욕..

카테고리 없음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