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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自問 -술잔 / 이기라

이동수 시인 2026. 5. 23. 15:24

 

채워지면 너로 인해

비워지는 내 가슴에

 

잡다한 일상사를

오늘도 털어 놓는

 

너에게

입술이나 바치는

나의 생은 무언가!

 

 

-이기라의 자문自問 -술잔은 삶의 쓸쓸한 내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화자와 마주 앉은 대상은 한갓 술잔에 불과하다. 술잔은 채워지고 비워지며, 그 앞에서 뭇사람들의 인생사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술잔을 앞에 두고, “너에게 / 입술이나 바치는 / 나의 생은 무언가!” 하며 자신을 향한 질책성의 반문을 한다.

결국 화자가 진정으로 만나야 하는 대상object은 누구인가? 그 대역의 방울 달아주기를 술잔에게 시도하였으니

그렇다. 남아에게 술잔보다 더 만만한 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산다는 것은 누구나 다 라고 하는 대상에 입술을 바치는 일, 그것이 바로 범생凡生의 길이자 도생圖生의 길 아닐까?                -(권혁모, 동서문학2020. 가을호 계간평)